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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인생/BOSTON

7년 만에 보스턴으로 다시 온 이유

by 코장군 2022. 9. 7.

(21.12.4  작성 글) 


 

미국 보스턴에 도착한지도 7일째 되는 날 새벽이다.

사실 우리 부부에게 보스턴이 처음도 아니고, 네 살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많은 곳을 둘러보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 6일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특히 이곳의 '내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있다.

 

이곳 가족과 나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자면 11년 전인 2010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긴 글 주의)

 

당시 난 미국 나이로 25살. 1년 휴학을 하고 이곳으로 어학연수를 왔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처음이었기에 모든 게 낯설었다. 내가 처음으로 살 게 된 곳이 바로 마틴의 집이었다.

 

출국 전에 이미 에이전시(유학원)를 통해 정해진 곳이었다. 오기 전에 내가 아는 정보는 "이 집에는 마틴과 제노가 살고, 그의 아들 로이가 살고 있다. 로이는 축구를 좋아한다" 이게 전부였다.

도착한 날 찍은 마틴의 집. 내가 10년 넘게 이 집을 넘나들지 몰랐다. (2010.9.6)

2010년 9월 6일.

처음 이곳에 도착해 보니 이곳은 내가 처음 미국에 오기 전에 상상했던 가정과는 느낌이 달랐다. 도대체 내가 그려온 미국의 가정은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부터 미디어에서 본 노란 머리 백인들의 가정을 상상했나 보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생김새도 말투도 문화도 내가 처음 기대(?) 했던 미국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주말마다 이 집 지하에서 벌어지던 파티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일단 음악부터 기상천외했다. 살사, 바차타, 매랭게, 차차 등이었으니까.

당시 라틴 춤을 처음 배우던 당시 비디오 캡쳐

태어나서 처음 듣는 노래, 춤, 분위기 그리고 언어. 이곳에선 다들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썼다. 영어도 떠듬떠듬 제대로 못하던 나에게 이런 환경은 좀 곤욕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좋았던 것도 있었다. 이들과 있으면 술은 무한대로 먹을 수 있었다. 럼. 데낄라. 코로나 맥주!

소주만 없다 뿐이지 정말 많은 술을 마셨다. (다행인 건 난 술을 좋아한다) 그래서 말이 안 통해도 정말 끝까지 먹고 끝까지 놀았다. 원래 술을 마시면 어색한 것도 좀 덜하고 엉터리 영어도 막 할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도착한지 이튿날 열렸던 파티. 이때 만난 인연들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다 보니 스스로 자문하게 됐다.

 

"지금 내가 이러려고 미국에 온 건가?

내가 여기 온 건 영어와 미국 문화를 배우러 온 게 아니었나?"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질문 자체가 정말 어리석었다.

 

영어(언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며, 문화 역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는 걸 사실 그때는 몰랐다.

 

그러던 차에 나보다 먼저 이 집에 홈스테이를 했던 한국 남자를 어학원에서 만나게 됐다. 그에게 이곳 생활이 어땠었냐고 묻자 그는 정말 참기 힘들었다면서 본인은 그래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말해줬다. 나 역시 그때는 조금 고민이 되기도 했다. 정말 여긴 아닌 걸까.

 

그러던 차에 10월이 왔다. 10월 1일은 제노의 생일이었다. 그들은 나를 가족 외식 자리에 데리고 갔다. 꽤 근사한 페루 음식점이었다. 마틴과 미궬의 고향이 페루라는 것, 그들이 마추픽추 근처의 쿠스코에서 왔다는 것도 그 시기 즈음 알게 된 것 같다.

제노의 생일날 함께 간 페루 음식점 (2010.10.1)

그리고 밤에는 살사 클럽에도 날 데리고 갔다. 내가 클럽 갈 복장이 없으니 본인들 옷까지 빌려줬다. 그날도 잊지 못할 밤이 됐다. 가족들과의 자리였지만 그들은 언제나 나를 불러주고 편하게 해줬습니다. 이쯤 되자 나는 자문하게 됐다.

 

만약에 나라면, 지구 반대편에서 온 외국 학생에게 이렇게까지 대해 줄 수 있을까?

 

언어도, 생김새도, 문화도 다르지만, 이들이 나를 진짜 가족처럼 대해 주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도 마음을 바꿔 먹었다.

 

"나도 그들에게 가족의 일원이 되어줘야겠다"

 

그 후로 내 주변 환경은 전과 같았지만 나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주말마다 듣는 바차타 음악도 즐거웠고 그들의 춤도 배우고 싶어졌다. '내가 그들에게 어떤 걸 배울까'가 아닌, '나는 그들에게 가족으로서 뭘 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걱정거리도 없어졌고 우리의 관계는 더욱더 견고해졌다.

 

물론 주말마다 항상 파티가 이어졌다. 난 그들에게 라틴 스텝도 배우고 함께 더 적극적으로 어울렸다. 내가 마음을 열면 열수록 그들도 나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이젠 파티가 당황스럽지 않고 주말이 기다려졌다.

이들 중에서 4년 후 결혼한 부부도 탄생함!

 

그 후로 난 그 집에서 11월까지 있었고, 12월~2월은 보스턴 다운타운에서 자취를 했다. 미국 생활에 자신이 붙었는지 난 또 다른 걸 경험해 보고 싶었나 보다.

그 집에서 나간 이후에도 꾸준히 왕래했고, 그들은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항상 날 불러줬다. 2011년 2월,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날은 나를 불러서 파티를 열어줬다. 내 지인들을 모두 불러서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줬다.

출국 직전 나를 위해 모여준 친구들

 

믿기 어렵겠지만, 마틴과 제노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부담을 주거나 비용을 요구하신 적이 없다. 물론 내가 그 집에 거주하는 몇 달 동안은 나도 월세 개념으로 에이전시에 돈을 보냈다. 아마도 그중 일부가 이들에게 가긴 했을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학생이라도 내가 참 뻔뻔했다 싶기도 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같은 해 지금의 아내인 Lucy 를 만난다. 미국에 다녀온 후 처음 들은 영어 수업에서 였으니, 난 이 만남 또한 내 미국 생활이 이어준 거라 생각한다.

 

2014년 7월, 파티 멤버 중 한 쌍이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됐고, 그 결혼식 참석을 위해 나와 아내(당시 여친)는 다시 보스턴을 찾았다.

4년 만에 재방문에 성공한 나는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사랑스러운 아내(당시 여친)를 모두가 가족처럼 반겨줬다. 그냥 있어도 매력적인 아내지만, 그녀가 스페인어도 잘하고 무엇보다 살사춤 대장이어서 우린 짧은 시간에 더 끈끈해졌던 거 같다. (일부러 이런 여자를 찾아서 연애를 한 건 아니지만....)

 

일주일가량 머물렀고,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미궬과 무박 2일로 밤에 차를 끌고 뉴욕에 다녀오기도 했고 (이건 미친 짓이다. 절대 하지 말길 ㅋㅋ)

 

 

마틴의 페루 가족과 함께 보스턴 시내 투어도 함께 했다.

 

마침 마틴의 집에서 머물고 마틴의 부모님과 조카 마르씨아와의 인연은 2년 후 페루에서까지 이어진다. 물론 당시엔 전혀 몰랐다. 2년 후에 우리가 페루까지 가게 될 줄은.

우린 당시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었기에 마틴 집 뒤뜰을 배경으로 미리(?) 웨딩촬영도 마쳤다. 우린 별도 웨딩촬영을 하지 않고 이날 찍은 사진을 결혼식 때 썼다.

 

 

귀국 전에는 마틴의 차를 빌려 파티 멤버(제이,발레리)의 미국 결혼식에도 참석했습니다. 미국 결혼식은 처음이라 문화적으로 많은 걸 느끼고 즐기고 왔다.

 

2010년 당시 파티 멤버와 재회.

마지막날 밤에는 귀국행 비행기가 뜨기 직전 새벽까지 함께 춤을 추다가 짐을 번개처럼 싸서(그냥 트렁크에 다 쑤셔 넣음) 공항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오는 비행기에선 그냥 바로 기절. 눈 깜빡하니 달라스(경유지)였던 ....

출국하는 비행기 타러 가기 직전.. 새벽.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6년 9월 페루

 

우린 허니문을 페루로 떠났다. 이 들과의 인연은 지구 반대편 이곳까지 이어졌다. 리마 공항에 내린 직후부터 마틴의 사촌 마누엘은 우리의 발이 되어줬고,

2014년 보스턴에서 만났던 마르씨아 덕분에 리마의 밤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쿠스코에서는 마르씨알(마틴의 아버지)의 집에서 묵었고, 마틴의 오래된 방에서 잠을 잤다. 마틴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그의 남편 얼버트가 없었다면 우린 쿠스코를 현지인처럼 즐기진 못했을 겁니다. 그들 덕분의 우리의 허니문은 더욱 특별하고 행복했다.

 

마틴은 함께 하진 못했지만, 항상 가족들에게 미리 연락해 우리가 여행을 잘 마칠 수 있게 도와줬다.

 

그들 덕분에 결국 밟을 수 있었던 마추픽추! 그라씨아쓰 !

 


 

그리고 2017년 2월 도쿄

 

마틴이 출장으로 도쿄를 들렀을 때 우리도 시간을 맞춰 도쿄로 건너갔다. 2년 반 만에 재회한 우리들. 그 사이 우린 부부가 되어 있었다. (2016년 9월 결혼)

 
가는 곳마다 우리의 선물을 가득 사줬습니다
어마어마한 과음도 역시 뒤따랐고요!
아내와 제노는 헤어질 때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어요.

 

그리고 지금. 2021년 12월이다.

 

2010년 매사추세츠 퀸시의 어느 집에서 시작된 우리의 추억들이 점. 점. 점. 으로 이어져 오늘에까지 왔다. 이제 미궬의 자녀들과 내 딸과 어울리는 걸 흐뭇하게 보며 Season 2를 찍고 있다. 이번엔 위스키를 한 잔씩 곁들이면서 말이다. 부모 된 입장에서 다시 우리 관계를 생각해 보니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된다.

만나는 첫날부터 친해진 나와 미궬의 딸
크리스마스를 꾸미는 것도 내 딸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한국에선 집이 좁아서.....

 

제노도 우리를 항상 가족같이 따뜻하게 맞아 준다. 함께 놀러 간 쇼핑몰에서 내 딸의 옷을 끊임없이 사줘서 그 걸 말리느라 힘들었다. 결국 우린 그녀를 못 이기고 한국에 다 챙겨오기 힘들 정도로 선물을 받았다.

 

7년 반 만에 2세와 함께 다시 찾은 마틴의 집.
10년 전 만난 크리스토퍼도 이제 결혼을 했습니다

 


 

일단은 여기까지다.

 

 

나도 11년간의 우리 관계에 대해 정리를 해본 건 처음이라 작성하는 내내 옛날 생각도 나고 행복했다. 그리고 되돌아 보니 내가 이들에게 너무 많을 걸 받아왔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 덕분에 이곳에 와 있다.

 

누군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들 부자야? 돈 많아? 왜 이렇게 퍼주지? 하지만 이들도 정말 평범한 이민 1세대 가정일 뿐이다. 우리처럼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때 지친 몸으로 퇴근한다. 똑같이 직장 스트레스도 있을 것이고, 가족 간에 365일 행복한 것만도 아닐 거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사는 그들을 보며 지난 10년간 내 삶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더 잘 살아야겠다. 가족을 잘 지켜내야겠다'라는 동기부여도 된다.

 

난 지금 미궬의 집에서 아내와 딸과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중이다. 내가 찍고 있는 점이 또 미래에 어떤 점으로 연결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며 즐겁게 잘 살았구나 싶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 되는 지도 모르겠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그라씨아쓰!

 

 

- 다음편에 계속-